행사 장소 — 오래 남지 않도록 설계한 무대
행사 장소(그린박스 01)를 검토할 때 대개는 이미 있는 시설을 어떻게 고를지에 초점이 맞춰진다. 인증받은 컨벤션센터를 쓰는지, 대중교통이 닿는지, 주변 생태계를 훼손하지 않는지 같은 항목이다. 그런데 야외 부지에서 열리는 행사는 상황이 다르다. 빈 땅에 도시를 하나 세웠다가 며칠 뒤에 걷어내야 하고, 그 세웠다 걷어내는 과정 자체가 이 행사의 가장 큰 물질 흐름이다. 무대와 부스, 화장실과 조명탑은 대부분 합판과 철골, 트러스와 배너로 만들어지고 행사가 끝나면 창고로 가거나 폐기물로 간다. 창고로 간다 해도 다음 해에 같은 규격으로 다시 쓸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원더프룻이 택한 전제는 명료하다. 자연 속에 자연의 재료로 지었다면, 그 구조물은 쓰임이 끝났을 때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행사는 자신들의 방식을 녹아 없어지는 건축이라고 부른다. 오래 버티도록 짓는 대신, 해체하면 부재로 돌아가고 그대로 두면 분해되는 구조를 짓는다. 극단적인 선언처럼 들리지만 실제 운영은 훨씬 실무적이다. 행사가 끝난 뒤 구조재의 일부는 다음 회차 설치물의 부재로 넘어가고, 남은 자재는 덩굴식물의 지지대나 현지 동물의 서식처, 또는 토양의 퇴비가 된다. 2500개의 벽돌이라는 설치물은 지금 곤충과 식물의 서식지가 됐다. 이 행사가 자기 설치물에 요구하는 기준은 환경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차지한 환경에 무언가를 남기는 것이다.
주 재료는 대나무다. 태국 전역의 열대 지역에서 자생하고 수십 종 가운데 구조적 필요에 맞춰 고를 수 있으며, 목재보다 유연하면서 인장강도가 높아 휘어도 잘 부러지지 않는다. 목욕탕 시설인 배스 하우스, 275명이 끊김 없이 이어진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는 시어터 오브 피스츠, 팜 스테이지와 라이좀 콜로니가 모두 대나무 구조물이다. 대나무를 쓰는 이유가 이미지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이 이 행사의 설명에서 드러난다. 구조물을 분해할 수 있어 자재가 버려지지 않고, 수명이 다하면 생분해되며, 무엇보다 대나무를 다루는 과정에서 디자이너와 현지 장인 공동체가 한자리에 모이게 된다.
실패도 기록돼 있다. 2018년에 대나무와 재사용 드럼통만으로 지은 첫 배스 하우스는 흰개미가 대나무를 먹어치우면서 다시 설계해야 했다. 이후 판본도 대나무를 구조 부재로 계속 쓰되 구성이 바뀌었다. 국내 행사가 참고할 대목은 여기다. 자연 재료를 쓰겠다는 결정은 미관의 문제가 아니라 유지관리와 안전의 문제를 새로 떠안는 결정이고, 첫해에 문제가 나오는 것이 정상이다. 한 번 실패했다고 자재를 되돌리는 대신 설계를 고쳐 가며 같은 재료를 유지한 것이 10년 동안 40개가 넘는 공간을 이 방식으로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다.
